



〈흰 종이 위의 정글〉
도시는 회색이었다. 건물, 도로, 사람들까지도 마치 동일한 색상표에서 나온 듯한 무채색의 행렬 속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오래된 가죽 소파와 커다란 테이블 하나가 전부인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 ‘LINO’가 있었다. 그곳의 디자이너, 윤이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녀의 작업 방식은 항상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됐다.
“이 문제를 사람 아닌 새라면 어떻게 풀까?”
혹은 “빛이 디자인한다면 어떻게 말할까?”
동료들은 가끔 그녀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마감이 임박한 브랜딩 작업에, 윤이는 며칠씩 숲에 들어가 있었다. 거기서 나무껍질의 결, 까마귀 울음의 리듬, 이끼의 질감을 스케치북에 기록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도시의 한 쓰레기 처리 업체를 위한 브랜딩이었다. 클라이언트는 ‘친환경’과 ‘재활용’을 내세우고 싶어 했지만, 윤이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